애니 만화 게임 소감 / / 2019. 1. 15. 02:32

[게임] 옥토패스 트래블러 - 클리어 소감 (Switch)


(※ 스포일러는 없습니다만 즐겁게 플레이하신 분은 안 읽으시는 게 좋을지 모릅니다)


[옥토패스 트래블러]는 도트 그래픽 텍스처에 3D 배경을 접목시킨 HD 2D를 내세우며 스퀘어 에닉스에서 닌텐도 스위치로 나온 게임인데, 예전에 감상을 올린 바 있는 [빛의 4전사], [브레이블리 디폴트 1&2]를 만든 제작진의 신작이라고 하여 개인적으로 상당히 기대가 컸던 게임입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프로듀서가 같을 뿐, 게임 제작 및 디렉션은 스퀘어 에닉스가 아니라 외주로 아크와이어에서 미야우치 케이스케 씨가 했으며, 전작을 맡은 유명 시나리오 라이터 하야시 나오타카 씨와 캐릭터 디자인 및 아트워크를 담당했던 요시다 아키히로 씨까지 모두 빠져서, 턴 숫자를 모아 쓴다는 전투 개념을 제외하면 사실 전혀 관계없는 작품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우선 이 게임을 한 줄로 평가하면 "전투와 그래픽은 최고! 스토리와 구성은 최악!"이라고 하고 싶습니다. 먼저 단점인 구성부터 집고 넘어가자면, 이 게임이 세일즈 포인트로 내세우고 있는 자유도, 즉 여덟 명의 주인공 중 원하는 캐릭터만 골라서 플레이할 수 있다는 점이 모든 문제의 원인이 되고 있었습니다.



이 게임은 극단적으로 말하면 단 한 명만 선택해서 플레이해도 괜찮도록 디자인되어있고, 그 탓에 여덟 명의 캐릭터가 100퍼센트 독립된 별개의 이야기를 풀어가며 서로 간섭하질 않습니다. 각 캐릭터는 1~4장의 챕터로 시나리오가 나뉘어져 있는데, 그렇다고 한 명씩 천천히 이야기를 즐기기엔 챕터별로 필요 레벨이 설정되어있고, 전투 시스템 상으로도 무리가 크기 때문에 결국 여러 캐릭터를 돌아가며 플레이 할 수밖에 없으며, 그 탓에 각 챕터를 시작할 때마다 항상 줄거리가 다시 표시되어야 할 만큼 흐름이 단절됩니다. 더 큰 문제는 각각이 완전 별개의 스토리라 캐릭터 사이의 관계성이나 유대도 전혀 없고, 실제로 동료가 곁에 있으면 얘기가 성립되질 않는 장면도 빈번하게 발생한다는 점입니다 (모 게임의 프라이빗 액션 같은 대화 이벤트가 존재하긴 하지만 빈도도 매우 낮고 거의 의미는 없습니다). 서브 시나리오도 누구로 플레이하든 내용이 같게 만들어야 했기 때문에 결국 NPC들만 대사가 있고 플레이어는 그냥 고개만 끄덕이는 정도라, 그야말로 전부 심부름을 하며 세계관을 구경하는 내용들에 불과했습니다.


그렇다고 그 각각의 스토리가 재미있냐고 하면 그것도 아니어서, 좋게 표현하면 클래식하다고 해줄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보다는 꽤나 진부하고 지나치게 교훈적이며 단순한 권선징악 이야기라 시나리오의 즐거움은 거의 제로에 가까웠습니다 (결국 다들 말은 그럴싸하게 하면서 전투로 모든 걸 해결하고 말이죠). 그나마 괜찮았던 건 사냥꾼 한이트의 시나리오 정도고, 삼류 추리에 지나친 이상론을 주장하는 사이러스라든지, 선악 관념이 들쭉날쭉한 인물들이 많아서 공감하기 어려운 내용도 적지 않았습니다.



스토리에 관해선 완전히 악평을 하고 말았습니다만, 그래도 전투만은 이런 시나리오라도 한 번쯤 플레이할 가치고 있다고 해줄 만큼 재밌게 잘 만들어져 있습니다. 특히 클리어 이후의 추가 던전을 포함해서 보스들과의 전투가 백미인데, 턴 숫자와 약점 내구도, 어빌리티를 조합시킨 전략성은 그야말로 턴제 전투의 재미를 극한까지 끌어올렸다고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닐 만큼 훌륭합니다.


그 밖에도 이렇게 마을과 던전의 숫자가 많은 RPG가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필드의 볼륨은 만족스러웠고, 여기 사는 NPC들에게 일일히 자잘한 재미를 심어넣은 점과, 캐릭터별 필드 커맨드를 활용한 여러 요소들은 RPG의 기본인 탐험과 발견의 즐거움이란 면에 있어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최근 인디 게임을 중심으로 도트 그래픽이 다시 주목을 받고 있는데, 이를 요즘 스타일로 한 단계 발전시킨 그래픽 또한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마음에 들었던 요소입니다.


총평을 하자면 스토리를 중시하는 게이머에겐 결코 추천하기 힘들지만, 시스템적인 측면, 특히 전투의 재미를 우선시하는 분에겐 한 번쯤 즐겨보길 권하고 싶은 게임이었다고 하겠습니다.